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르트만 그라서 (문단 편집) === 쌍발 전투기를 몰다 === 해가 바뀐 [[1940년]] 1월에 제52구축전투항공단(Zerstörergeschwader 52)으로 재편성되면서 그가 속한 중대는 I./ZG 52이 되었다. 칼 하인츠 레스만(Karl-Heinz Lessmann : 1915~1943 / 37대 격추) 대위가 사령관을 맡게 된 이 부대는 일종의 쌍발 중전투기 실험부대 역할을 했는데, 6월에는 제2구축전투항공단 제2비행단(II./ZG 2)으로 바뀌었다. 그동안 하르트만 소위는 [[도버 해협]]에서 [[영국 공군]]과 전투를 하면서 2대를 더 격추시켜 격추수를 6대로 늘려놓고 있었다. 베테랑 에이스이자 항공단 사령관이자 당시 독일 공군에서 최고의 격추수를 자랑하고 있던 [[베르너 묄더스]] 소령은 이 오스트리아 출신 조종사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 자신의 부대인 제51전투항공단([[JG 51]])에 부관으로 불러들였다. 이렇게 해서 그라서는 10월에 JG 51로 배속되면서 단발 전투기를 몰게 되었다. 12월 1일에 하르트만 소위는 [[켄트(잉글랜드)|켄트]]주의 애쉬포드(Ashford) 근처에서 [[호커 허리케인]] 전투기를 격추하며 전입 첫 전과를 거두었다. 그 후 [[바다사자 작전]]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휴식을 취한 그는 이듬해인 1941년 6월부터 [[러시아]] 침공에 참가하게 된다. 새로운 전선에 도착한 그는 [[바르바로사 작전]]의 첫날에 소련 공군의 [[https://blog.naver.com/naljava69/60200160713|투폴레프 SB]] 폭격기를 격추하며 [[독소전]]에서 첫 무공을 기록했다. 6월 29일에 2대를 더 해치운 하르트만 그라서는 마침내 독일 공군에서 에이스(Ass)로 불리게 되는 기준인 10회의 승리를 기록했다. 그후로도 꾸준히 전공을 세우던 그라서가 7월 29일에 [[DB-3]]를 격추하자, 그는 이제 20기 격추를 헤아리게 되었다. 전투력을 인정받은 그는 8월 1일에 제5비행중대(5./JG 51)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. 9월 7일까지 그는 자신의 30번째 격추가 되는 [[I-16]] 전투기를 카를베츠(Karlewez) 부근에서 잡아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